카테고리 없음

달동네의 밤

정영주 작가 2013. 2. 12. 11:53

달동네의 밤

- 사라지는 풍경 -

2012.10.18

어둠이 하늘에서 내려오면

달동네 언덕에선 달이 떠오른다

처음에는 그믐달 서넛

수십개 반달이었다가

시나브로 수백개 보름달이 뜬다

폐사지같던 마을에

흩어졌던 사람들 돌아오면

된장찌개 냄새

골목길 따라 구불구불 퍼지고

허기진 아이들 볼에서는

군내나는 김치가 우물우물 넘어간다

거머리같은 가난의 굴레를

독한 소주로 씻어내려는 사내와

연탄재처럼 쌓여만 가는 빚에

흐르는 눈물

달빛에 말리는 아낙도 있다

한 이불 아래 시린 어깨를 맞대고

잠든 아이들처럼

몸통과 몸통을 맞댄 남루한 집들이

길을 삼켜버린 곳

부화하지 못한 꿈과

발아하지 못한 행복이

어둠 깊을수록 빨갛게 달아오른다

언덕 아래 사람들은

달동네를 벽에 걸린 풍경화로 여기지만

달동네도 더운 피가 흐르고

삶의 단내가 나는 마을이다

부침개 한쪽을 나누고

밥 때가 되면

배곯는 옆집 아이 슬그머니 부르고

쿨럭이는 노인네

삐걱이는 문을 두드려보는

덧정이 달빛처럼 흐르는 곳이다

저마다 장편 소설 분량의 사연

침묵 속에 감춘 집들

무채색의 담장 뚫고

띠로 이어주는 노란 불빛들

천국에 이르는 길이 있다면

어느 한 구간은 이 동네일 것이다

가난해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고

신의 길은 곡선이라 했으므로

@@@@

* 화가 정영주 님이 그린 '사라지는 풍경' 그림을 보고

어릴 적 기억이 떠올라 쓴 시입니다.